1951년 1·4 후퇴의 비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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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1년 1월 중공군의 공격 목표는 서울이었습니다. 이를 위해 철원과 연천에서 4개 군을 앞세워 서울을 압박했습니다.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에 방어선을 구축했고 터키 여단과 미 제25사단 그리고 영연방 제27여단 등을 배치했지만 이미 밀리기 시작한 전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.워낙 병력이 부족해서 1개 대대가 10km 정도를 감당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. 결국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은 서울이 중공군의 포격권에 들어가고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이 중공군에 의해 동서로 나눠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1월 3일 서울을 포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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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1년 1월 중공군의 공격 목표는 서울이었습니다. 이를 위해 철원과 연천에서 4개 군을 앞세워 서울을 압박했습니다.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에 방어선을 구축했고 터키 여단과 미 제25사단 그리고 영연방 제27여단 등을 배치했지만 이미 밀리기 시작한 전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.워낙 병력이 부족해서 1개 대대가 10km 정도를 감당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. 결국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은 서울이 중공군의 포격권에 들어가고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이 중공군에 의해 동서로 나눠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1월 3일 서울을 포기